책소개
1900년 프로이트는 ≪꿈의 해석≫을, 1905년 아인슈타인은 특수상대성이론을, 1907년 피카소는 입체파 회화를, 1909년 마리네티는 <미래파 선언>을 발표했다. 이 시기 터진 정치적·군사적 대사건이 바로 1914년 발발한 제1차 세계대전이다. 이처럼 변혁과 전쟁으로 점철된 시기에 독일 표현주의 문학이 꽃핀다.
표현주의는 영어권에서 발생해 프랑스를 거쳐 독일에 들어와 마침내 뿌리를 내림으로써 회화·조형미술·문학·영화 등에서 괄목할 만한 결과를 만들어 낸다. 특히 문학과 관련해서는 독일어권에서 일어난 독특한 현상으로까지 주목받는다. 독일 문학사에서는 새로운 스타일의 글쓰기뿐 아니라 새로운 생활양식도 목표로 삼는 젊은 작가들의 반란이 18세기 후반 질풍노도 시대부터 나타나는데, 마지막이자 가장 강도 높은 반란이 바로 표현주의다.
‘표현주의 10년’은 독일 문학사에 분명하게 존재하며, 이후 문예 사조에 끼친 영향이 뚜렷하지만 표현주의 문학이 무엇인지, 표현주의 작가가 누구인지 누구도 분명한 기준을 제시하지 못했다. 동시대 문학비평가는 ‘문학혁명’으로 평가했고, 국가사회주의자는 ‘퇴폐예술’로 보았으며, 마르크스주의 문학비평가는 ‘파시즘의 선구’로 비판했다. 그러나 개념 정의에 혼란을 겪으면서도 표현주의는 차츰 격변기의 문학 사조로 자리를 잡아 갔다. 인간 내면의 변화에 따른 인간과 세계의 개혁을 주제로 하는 표현주의 이념극이 무대에서 확고한 기반을 차지함으로써 표현주의는 절정에 이른 것이다. 그러나 표현주의는 유토피아·현실도피 경향, 주관적 사고의 지나친 강조, 예술형식의 취약성, 시대와 사회의 변천에 따라 1920년을 분기점으로 물러나기 시작했다.
이 책은 30년간 독일 표현주의 문학을 연구하고 강의한 김충남 교수가 그동안 발표한 논문을 수정·보완하고 새로운 글을 추가해 엮은 것이다. 제I부에서는 동시대의 작가와 비평가 사이에서 논란이 많았던 표현주의의 개념을 알아본 다음, 표현주의 10년의 서정시·희곡·산문 발전 과정을 개관한다. 제II부에서는 대표 표현주의 시인인 호디스, 하임, 벤, 슈타들러 등의 작품을 세계의 종말과 대도시, 시체 공시장, 오필리아 모티프, 전쟁, 에로스와 섹스 등 주제별로 다루었다. 제III부에서는 베데킨트, 하젠클레버, 슈테른하임, 카이저, 톨러, 베르펠의 희곡 작품을 부자 갈등, 새로운 인간 등과 관련해 살펴본다. 제IV부에서는 시와 희곡에 견주어 상대적으로 평가 절하된 산문 분야 가운데 특히 되블린과 하임의 작품을 광기와 광인의 관점에서 심층적으로 분석한다. 끝으로 제V부에서는 표현주의 문학으로부터 환상적이고 그로테스크한 다양한 요소들을 수용하면서 독일 표현주의가 영어권과 불어권에서 커다란 관심을 끄는 계기를 마련한 표현주의의 대표 영화 <칼리가리 박사의 밀실>을 알아본다.
200자평
표현주의는 질풍노도.낭만주의와 함께 가장 독일적인 문학 사조다. 1910∼1920년 일어났던 표현주의 운동은 기존 사회와 문화를 비판하고 인간의 변화와 사회의 개혁을 노래했다. 이 책은 30년간 독일 표현주의 문학을 연구하고 강의한 김충남 교수가 그동안 발표한 논문을 수정.보완하고 새로운 글을 추가해 엮은 것이다. 시.희곡.산문 작품을 세계의 종말, 대도시, 전쟁, 부자 갈등, 새로운 인간, 광기와 광인 등의 주제에 따라 살펴본다.
지은이
김충남은 한국외국어대학교 독일어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 대학원에서 문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독일 본대학교에서 독문학을 수학했으며, 뷔르츠부르크대학 및 마르부르크대학교 방문교수, 체코 카렐대학교 교환교수를 지냈다. 1981년부터 한국외국어대학교에 재직하면서 외국문학연구소장, 사범대학장, 한국독어독문학회 회장을 역임했다. 저서로는 ≪세계의 시문학≫(공저), ≪민족문학과 민족국가 1≫(공저), ≪추와 문학≫(공저), ≪프란츠 카프카. 인간· 도시·작품≫, ≪표현주의 문학≫이 있고, 역서로는 게오르크 카이저의 ≪메두사의 뗏목≫, ≪아침부터 자정까지≫, 페터 슈나이더의 ≪짝짓기≫, 하인리히 폰 클라이스트의 ≪헤르만 전쟁≫, 에른스트 톨러의 ≪변화≫, 프란츠 베르펠의 ≪거울인간≫, ≪야코보프스키와 대령≫, 프리드리히 헤벨의 ≪니벨룽겐≫ 등이 있다. 주요 논문으로는 [응용미학으로서의 드라마-실러의 ‘빌헬름 텔’ 연구], [신화의 구도 속에 나타난 현재의 정치적 상황-보토 슈트라우스의 드라마 ‘균형’과 ‘이타카’를 중심으로], [최근 독일문학의 한 동향: 페터 슈나이더의 경우], [베스트셀러의 조건-쥐스킨트의 소설 ‘향수’의 경우] 외에 독일 표현주의 문학과 카프카에 관한 논문이 다수 있다. 2014년 현재 한국외국어대학교 독일어과 명예교수로 ‘독일 명작 산책’과 ‘독일 작가론’을 강의하고 있다.
차례
머리말
제I부 표현주의의 개념
제II부 표현주의 시
제1장 특징
제2장 세계의 종말과 대도시: 호디스, 하임
제3장 시체 공시장: 벤
제4장 오펠리아: 하임, 벤, 브레히트
제5장 전쟁: 슈타들러, 하임, 트라클
제6장 사랑, 에로스 그리고 섹스: 벤제
III부 표현주의 희곡
제1장 주제와 형식
제2장 자연주의에서 표현주의로: 베데킨트
제3장 부자 갈등: 하젠클레버
제4장 고유한 뉘앙스의 실현과 은유에 대한 투쟁: 슈테른하임
제5장 새로운 인간의 실험: 카이저
제6장 새로운 인간으로의 변화: 톨러
제7장 개전과 구원: 베르펠
제IV부 표현주의 산문
제1장 개관
제2장 시민의 광기: 되블린
제3장 정신병원과 대도시(환상과 현실): 하임
제V부 표현주의 영화: <칼리가리 박사의 밀실>
제1장 표현주의 영화의 태동
제2장 <칼리가리>의 오리지널 시나리오와 비네의 영화
제3장 <칼리가리>에 대한 평가
제4장 <칼리가리>의 성과와 성공 요인
맺음말: 표현주의의 수용과 연구 동향
참고 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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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은이에 대해
책속으로
1.
처음엔 인상주의에 대한 반대 명제로 가볍게 취급되었던 표현주의는 미래파 논쟁, 동시대 문학과 표현주의 회화의 비교, 작가의 정치적·사회적 책임에 대한 인식을 통해서 차츰 새로운 시대의 이상을 위한 중요한 형식으로 발전해 나갔다.
이렇게 해서 표현주의 문학은 점차 파토스와 주관적 사고에 따른 공통적 세계관과 예술관을 형성하게 되며, 나아가 새로운 현실, 새로운 세계, 새로운 인간 등 통일된 주제들을 제시하게 된다. 특히 표현주의 문학에서 혁명적인 요소는 인간의 개혁, 즉 창조적이고 세계를 바꾸는 인간 자아의 재발견이다. 이와 관련하여 동시대 비평가들이 철저한 표현주의자라 지칭한 에트슈미트는 강연 <문학에서의 표현주의>에서 “무한한 감정, 세계 감정, 위대한 비전으로서 존재, 내면의 폭발에 관해” 이야기하며, “상황에 대한 합리적 판단에 따라서가 아니라, 사명감을 의식하고 있는 자아의 자율 행위에 따른 세계 변화”를 강조한다.
2.
광인들은 이 시대 주요 단편들의 중심인물로서 표현주의 문학에서 특별한 의미를 지닌다. 광기는 자제력, 질서 및 의무 의식, 사회 적응 능력 등 시민적 미덕의 반대로 정의되면서, 표현주의에서 처음 문학적 모티프로서 위력을 십분 발휘한다. 표현주의의 젊은 예술가들은 후기 빌헬름 시대의 권위주의적이고 가부장적인 사회와 진부한 문화에 공격적으로 대응하면서 광기를 재평가하거나 평가 절상했다. 광기 모티프는 동시대 현실의 본질을 모사하면서 시대의 거짓을 폭로하고 시대의 고통을 직시하게 하는 기능을 지니기 때문이다. 나아가 광인은 병든 사회의 산물이자 표징으로서 뒤틀리고 손상된 존재의 고통을 일목요연하게 보여 준다.